KBO 프로야구 레전드 시리즈 – 01 – 박진만


 
박진만 (유격수)
1976년생
별명 – 만두 (생김새) , 고향만두 (11년 SK 입단이후)
인천고 출신으로 96년 현대유니콘스 고졸 우선 지명
96년~04년 – 현대 유니콘스
05년~10년 – 삼성 라이온즈
11년~15년 – SK 와이번스
現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17~)
 
국가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
2006년 WBC 1회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프로야구 레전드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의 영원한 영웅으로 유격수 박진만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 야구에서 과연 최고의 유격수가 누구냐는 논쟁에서 항상 들어가는 선수가 박진만 現 삼성라이온즈 수비코치다. 주로 세명이 거론되는데 아마 7관왕에 빛나는 김재박, 해태 왕조의 야구 천재 이종범, 그리고 명품 수비 박진만이다.
개인적으로 김재박 전 감독의 선수 시절을 말미에 3루수 시절만 보았기에 이종범 해설위원과 박진만 코치의 선수 시절을 비교해보면 유격수 이종범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다이나믹한 수비를 펼치면서도 타선에서의 리더쉽이 더 강한 전체적으로 보면 데릭 지터의 느낌이 강한 반면에 유격수 박진만은 부드럽고 군더더기 없는 수비 실력으로 現 LA 에인절스의 안드렐톤 시몬스처럼 수비 하나를 가지고 경기를 좌지 우지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필자의 성향상 유격수라면 역시 수비력이 최우선되기에 이종범 해설위원에게는 죄송하지만 박진만 코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즉, 유격수 이종범의 수비가 테크닉의 영역이라면 유격수 박진만의 수비는 아트의 영역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박진만 코치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기에 당시 인천고에 진학하게 되어 동대문 구장으로 야구 응원이 낙이었던 필자는 전국 대회 4강 정도에서 머무르는 성적에 물론 만족하지만서도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당시 에이스는 한 학년 위의 윤형진 선배 (추후 기아타이거즈에 지명) 가 2학년 때부터 에이스로 있었기에 투수력 걱정은 덜었지만 타선의 중심축을 담당하던 3학년 선배들이 대거 졸업을 하게 되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야구를 좋아하는 한 친구에게 원래 3학년 형님들과 같은 학년인데 무릎 수술 여파로 1년을 쉬고 돌아오게 되는 선배님이 있는데 우리가 알던 그 든든한 3학년 형님들도 모두 이 형님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최고의 유격수가 있고 이번 년도에 복학한다고 올해 이 형님이 타선과 팀 전체를, 윤형진 선배가 투수진의 중심을 잡으면 역시 해볼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2학년이 되었고 늘 그렇듯이 전년도에 4강에서 부천고에게 아깝게 패배했던 봄철 대통령배 응원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박진만 선배가 그날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추후 엄청난 레전드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의 박진만 선배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이자 데릭 지터이자 김재박이자 이종범이자 안드렐톤 시몬스를 다 섞어 놓은 것이나 진배 없었다. (참고로 그 시절에는 안드렐톤 시몬스는 없어서 오마 비즈켈이나 아지 스미스 정도로 생각했다. 사실 알렉스와 지터도 신인급으로 이들은 96년부터 만개했다)
(참고로 95년도 봉황대기 1차전에서 박명환의 충암고를 1:0 으로 제압한 경기는 평생 남을 것 같다)
 
당연히 그는 국내 고졸 유격수 중에 탑 오브더 탑이었고 필자가 알기로 고려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듯이 박진만 코치가 200점 만점 기준 수능 40점도 못맞을 머리가 아님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년도 이승엽 사건에 이어서 박진만 선배도 수능 점수 미달로 현대 유니콘스로 계약금 2억 8천만원에 입단을 하게 된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신흥 강호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참고로 현대 유니콘스가 약팀 태평양을 탈바꿈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미 태평양 시절부터 강팀으로 가기 위한 조건들이 80년대 말부터 형성이 되고 있었고 여기에 화룡 점정을 찍은 것이 현대 유니콘스였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던 신생 현대 유니콘스의 신임 감독이 김재박 전 감독이었다.
그리고 김재박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으로 고졸 신입 박진만을 찍었고 등번호 또한 자신의 현역 시절 상징과도 같던 7번을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고졸 유격수 박진만이 최고가 될 때까지 신입 시절부터 한 몇 년간 끊임 없이 기회를 주고 혹독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박진만은 원래도 엄청난 잠재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명품 수비의 유격수가 되었다.
참고로 96년도에 고졸 신입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빼앗긴 사람이 바로 現 SK 와이번스 단장인 염경엽 前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다.
1996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2015년 시즌까지 거의 대부분을 유격수로 출장했던 박진만은 통산 1993경기에 출전하여 1574안타 153홈런 2할 6푼 1리를 기록한다.
선수 초창기의 성장기와 선수 생활 말기의 경력 저하를 감안하면 전성기의 박진만은 경기를 지배하는 수비력 위에 2할 8푼 내외의 타율과 10~15개의 홈런과 센스있는 볼넷 등으로 출루율 3할 6푼 정도를 기대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였다.
무엇보다 그의 소속팀은 성적이 아주 좋았는데, 현대 유니콘스 시절 4회 우승, 삼성 라이온즈 시절 2회 우승과 한국시리즈 출전 10회에 빛나며 이로 인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던 행복한 선수가 아니었나 싶다.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5회, 06년 한국시리즈 MVP 수상)


 
이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는 특히 국가 대표간 경기에서 여러 차례 명품 수비를 보여주며 우리 나라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유독 올림픽 때는 마지막 아웃카운트에 관여하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유격수 땅볼을 직접 잡아 2루를 밟으며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하였고 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구리엘의 유격수 땅볼을 안전하게 잡아 2루수 고영민에게 토스하였던 장면 등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06년 WBC 에서는 출전 팀들마다 대한민국에 컴퓨터 게임처럼 수비하는 유격수가 있다는 찬사를 받았던 것이 아직도 필자의 기억 속에 뿌듯하게 남아 있다.
(이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비 장면은 대만전)
그가 수비하는 곳이 메이저리그다라는 현수막이 시즌 내내 걸려 있을 정도로 그의 명품 수비는 지금도 필자가 울적할 때면 유튜브로 보면 안구 정화를 담당하는 고마운 영웅이다.

개인적으로 꼭 2000 게임을 채웠으면 좋았겠는데 이를 채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마찬가지로 박경완 코치도 안타까움) 그래도 그는 내 마음속 아니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SK 와이번스 시절 응원가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반복) – 원곡 뷰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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